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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유죄 취지… 그러나 “무엇이 거짓인가”는 입증됐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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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유죄 취지… 그러나 “무엇이 거짓인가”는 입증됐는가?

roooot 2025. 5. 1. 20:13

2025년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2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핵심 쟁점은 이 대표의 두 가지 발언—① 대장동 사건 핵심 인물인 고(故) 김문기 처장과의 관계, ② 백현동 개발 과정에서의 국토부 압박 여부—가 허위사실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이 대표의 해당 발언들이 사실과 다르며, 유권자에게 거짓된 인식을 유도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판결이 납득할 만한 법적 구조를 갖추었는지, 특히 “무엇이 거짓인가”에 대한 실체적 기준이 충분히 입증되었는지는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발언: 인식과 해명인가, 허위사실인가


이재명 대표는 2021년 방송 인터뷰에서 “김문기 처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언했고, 국정감사에서는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이 “국토부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이 발언들을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했고, 2심은 개인의 인식·기억에 관한 발언은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1심과 유사한 판단을 내리며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설령 발언이 인식이나 기억에 관한 것이라 해도, 객관적 사실과 현저히 배치되고 유권자의 판단을 그르칠 정도라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즉, 발언의 형식이 주관적 해명이더라도 실질적으로 객관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한 것이라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무엇이 “거짓된 인식”인가?


대법원은 이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은 대장동 비리와 무관하다”, “백현동 개발 결정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사실과 다른 거짓된 인식”이라면, 그 발언은 허위사실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 “거짓된 인식”을 유도했다는 주장은, “그에 대비되는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해야 성립한다.
  • 즉, 이재명이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에 실제로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 혹은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 그런데 대법원은 비리 연루 여부나 정책 결정의 책임 구조에 대한 실질적 판단 없이 발언의 진실성 여부만을 판단했다.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거짓을 말했는지 판단하려면, 무엇이 진실인지 먼저 확정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이 당연한 논리의 선후를 생략한 채, “거짓된 인식을 유도했다”는 판단을 선행시켰다.



국토부의 ‘압박’은 존재했는가?


백현동 개발과 관련된 논란에서도 이재명의 발언이 허위였는지 여부는 “국토부가 실제로 압박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보도에 따르면 2014~15년 사이 국토부는 수차례 공문을 보내 “연내 용도변경을 완료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일정 압박의 뉘앙스를 담은 표현들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성남시 내부에서도 일부 공무원들이 “압박으로 느껴졌다”는 증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국토부의 공문을 “일반적인 협조 요청 수준”으로 해석했다. 압박의 실체는 인정하지 않고, 이 대표의 발언을 허위로 단정한 셈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정치적 해명과 책임 전가 사이의 경계에서, 법원이 지나치게 유죄 가능성에만 무게를 둔 판단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형사처벌의 경계


이 판결은 향후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해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기억에 의존한 발언, 정부기관에 대한 책임 지적, 심지어 사실에 대한 해석조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례가 생긴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특히 공직후보자는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정책과 책임, 이력을 설명할 자유가 있다. 그것이 사실관계와 어긋났다면, 정치적으로 비판받고 검증을 받아야 할 문제이지, 자동적으로 형사처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결론: 무엇이 허위인가, 그 전제를 묻는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거짓말 여부를 넘어, 법원이 정치적 해명과 허위사실 사이의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판단은, 때로는 진실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말을 ‘허위’로 규정하는 위험성을 수반한다.

선거는 유권자의 판단으로 완성된다. 법의 역할은 판단의 자유를 넓히는 것이지, 특정한 판단을 ‘거짓된 인식’으로 규정해 선거인의 판단 자체를 제한하는 데까지 나아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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