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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멀어져야 할까 함께해야 할까 — 통일교 사건과 손현보 목사 구속을 통해 본 정교분리의 경계선 본문
정교분리 원칙은 늘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주제다. 최근 국민의힘에 통일교 신도들이 집단 입당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정교유착 문제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정교분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헌법적·법적 가치가 침해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정치와 종교는 조금도 가까워져선 안 된다”는 단순한 메시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정교분리는 원래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와 결탁하거나 종교적 권위를 정치에 강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다. 헌법 제20조 제2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판례가 강조하듯, 이것은 종교와 정치의 모든 접촉을 금지하자는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다. 다시 말해, 이 원칙은 종교인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구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인이나 종교 집단이 세속적 가치에 기반하여 정치적 발언을 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 자체는 헌법상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 교단이 ‘창조세계의 청지기’라는 교리적 가치관을 근거로 기후 위기 대응을 주장하며 녹색당을 지지할 수 있다. 불교 단체가 평화와 비폭력의 가르침을 근거로 특정 평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을 지지할 수도 있다. 이런 행위는 정교분리 위반이 아니라, 종교적 가치관이 시민사회의 공적 담론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방식이다. 종교 지도부가 신앙적 권위를 이용해 신도들의 정치적 선택을 강제하거나, 정당과 종교 집단 사이에 정책적·금전적 거래가 이루어져 종교가 사실상 정치 권력의 기반으로 결탁할 때, 비로소 정교분리 위반이 된다. 즉, 정치와 종교가 가까워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관계가 은밀하고 강제적이며 민주주의 절차를 왜곡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 통일교 집단 입당 사건도 마찬가지다. 만약 신도들이 자율적으로 국민의힘의 가치에 공감해 가입했다면 헌법상 보장된 자유일 뿐이다. 그러나 지도부 차원에서 정당과 거래나 결탁이 있었고, 그 결과로 조직적 집단 가입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정치적 비판과 법적 수사의 대상이 된다. 특검이 이 사건을 정당법 위반이나 업무방해 혐의로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적 신앙을 근거로 한 자발적 정치 참여는 문제되지 않지만, 위계적 조직력을 이용한 집단적 동원이나 불법적 결탁은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왜곡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사례가 등장했다. 부산의 손현보 목사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그는 교회 강단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설교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종교 권위를 정치 선전에 이용한 부적절한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 사건 역시 정교분리 논의를 단순한 이념 싸움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우선, 종교인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보호받는 자유다. 목사가 신앙의 관점에서 사회 정의, 생명, 평화, 환경, 인권 문제를 설교하는 것은 정치적이라 해도 금지되어선 안 된다. 종교가 공적 담론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된다면, 그건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치적 종교 검열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강단이라는 종교적 권위의 공간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선동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종교적 권위를 정치적으로 전유하는 행위로서 위험하다. 신앙 공동체 내의 수직적 권위 구조를 통해 신도들의 정치적 판단을 사실상 통제한다면, 이는 종교 자유의 남용이자 정치적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결국 우리는 두 가지 극단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종교의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는 과도한 정교분리론, 다른 하나는 종교 권위를 이용해 정치 권력을 구축하려는 정교유착이다. 전자는 종교인의 시민권을 침해하고, 후자는 민주주의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해친다. 중요한 것은 종교와 정치가 접촉하는 ‘사실’이 아니라, 그 접촉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목적,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자유와 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정교분리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 닿지 말라”가 아니라, “서로 지배하지 말라”에 가깝다. 종교인은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자유가 있고, 국가는 그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는 자신의 신앙적 권위를 정치 권력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교분리 원칙을 단순히 금단의 장벽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균형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정치 참여는 사회의 도덕적 상상력을 넓히고, 정치의 윤리적 기준을 자극할 수 있다. 반면, 종교 권위의 정치적 남용은 자유와 평등의 토대를 흔든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정치적 종교의 부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치적 종교인과 중립적인 국가의 공존이다.
이번 통일교 사건과 손현보 목사 구속 사건은 모두 한국 사회가 정교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정교분리는 종교와 정치를 갈라놓기 위한 벽이 아니라, 둘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경계선이다. 이 경계선이 너무 멀어지면 신앙의 자유가 위축되고, 너무 가까워지면 민주주의가 훼손된다. 우리가 찾아야 할 균형점은 바로 그 사이, 자유와 책임이 만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