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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정차 과태료부과 의무이행청구 행정심판을 제기했습니다. 본문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스마트폰 앱(안전신문고)을 통해서 불법 주정차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불법 주정차 주민신고제)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불법 주정차를 신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불법 주정차의 종류와 시간대 등에 일정한 제한을 두어, 신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불법 주정차는 단속 공무원의 직접 단속으로만 단속 및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당 신고 횟수의 제한을 두기도 합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지자체에서 공고의 형식으로 발표하기 때문에, 지자체마다 모두 다를뿐 아니라 매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불법 주정차 주민신고제는 대략 아래와 같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 5대 주정차 금지 구역: 언제나 신고 횟수 제한 없이 1분 이상의 시차가 있는 사진을 첨부하여 신고할 수 있습니다.
- 그외 주정차 금지 구역: 07시~21시(11:30~14:30 제외) 인당 1일 3회까지 5분 이상의 시차가 있는 사진을 첨부하여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인도, 안전지대는 1분 이상의 시차가 있는 사진 첨부)
지난 2월, 산책을 하다가 인도 한복판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보행에 방해되는 것을 발견하고, 아래와 같은 사진을 첨부하여 안전신문고를 통해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녁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던 터라, 며칠 뒤에 구청으로부터 아래와 같이 답변을 받았습니다.
2022.02.01.부터 운영시간을 07:00~11:30, 14:30~21:00 사이에 촬영된 사진에 한하여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단속유예 (11:30~14:30)(21:00~07:00) 및 1인 신고횟수 3회/일 이하로 제한하여 운영하고 있어 귀하께서 신고하신 금번 신고 건은 운영시간외 촬영된 것으로 부과할 수 없습니다.
구청 입장에서는 주민신고제 규정에 충실하게 처리를 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저녁 9시가 지나면 인도라고 하더라도 주정차 허용구역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주민신고제로 신고가 불가능하면 구청에 전화를 해서 공무원 단속을 요청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저녁 9시 이후에는 단속 가능한 공무원 인력을 아예 배치하지 않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 구청에 민원 전화를 하면 당직실에서 응대를 하게 되는데, 불법 주정차 단속 부서 직원이 아닌 이상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해서 다음날 담당 부서에 관련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할 뿐입니다.
이렇듯 공무원이 24시간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그러한 공백을 메우고자 등장한 주민신고제인데, 구청에서는 그마저 시간 제한과 신고 횟수 제한을 두어 실질적으로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정심판이라는 걸 청구해 보았습니다.
행정심판은 구청과 같은 행정기관에서 불합리한 처분을 내렸을 때,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통해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온라인으로 간단히 청구가 가능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신고한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과태료 미부과 처분을 취소하고 과태료를 부과해 달라는 요지로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청구가 접수되자 행정심판위원회에서 제법 그럴듯한 사건명도 붙여 주었습니다. "불법주정차 과태료부과 의무이행청구".
제가 주장하는 내용은 간단합니다. 구청이 재량권을 남용한 결과 단속 의무가 있는데도 단속을 하지 않았으니 단속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로교통법과 이하 시행령 어디에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단속을 '유예'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모든 단속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주민신고만 받지 않겠다는 것이니 재량권 남용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도로교통법은 "제32조부터 제34조까지(불법 주정차 규정)를 위반한 사실이 사진, 비디오테이프나 그 밖의 영상기록매체에 의하여 입증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56조제1항에 따른 고용주등에게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낮 시간 동안에도 이 조항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했다면, 밤 시간에도 부과할 의무가 생깁니다. ("부과할 수 있다"가 아니기 때문에 기속행위에 해당합니다.)
도로교통법 제160조(과태료) ③ 차 또는 노면전차가 제5조, 제6조제1항ㆍ제2항(통행 금지 또는 제한을 위반한 경우를 말한다), 제13조제1항ㆍ제3항ㆍ제5항, 제14조제2항ㆍ제5항, 제15조제3항(제61조제2항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17조제3항, 제18조, 제19조제3항, 제21조제1항ㆍ제3항, 제22조, 제23조, 제25조제1항ㆍ제2항ㆍ제5항, 제25조의2제1항ㆍ제2항, 제27조제1항ㆍ제7항, 제29조제4항ㆍ제5항, 제32조부터 제34조까지, 제37조(제1항제2호는 제외한다), 제38조제1항, 제39조제1항ㆍ제4항, 제48조제1항, 제49조제1항제10호ㆍ제11호ㆍ제11호의2, 제50조제3항, 제60조제1항ㆍ제2항, 제62조 또는 제68조제3항제5호를 위반한 사실이 사진, 비디오테이프나 그 밖의 영상기록매체에 의하여 입증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56조제1항에 따른 고용주등에게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 위반행위를 한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어 제143조제1항에 따른 고지서를 발급할 수 없는 경우(제15조제3항, 제29조제4항ㆍ제5항, 제32조, 제33조 또는 제34조를 위반한 경우만 해당한다)
2. 제163조에 따라 범칙금 통고처분을 할 수 없는 경우
하지만 청구를 하면서도 스스로 이 청구가 과연 인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습니다. 행정심판 청구 요건이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행정심판 재결례를 찾아보면,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본안 심사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심판 자체가 각하되는 사례가 상당히 많습니다. (행정심판 처리현황 통계 데이터를 보면, 2020년도 기준 약 20%의 사건이 본안을 다퉈 보지도 못하고 각하되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청구 요건은 청구인 적격입니다. 청구인 적격이란 의무이행심판 청구는 "일정한 처분을 구할 법률상 이익을 가지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규정입니다.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 심판을 마구잡이로 제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법률상 이익'이 불확정 개념이고, 판례는 이를 상당히 좁게 해석해 왔다는 것입니다.
행정심판법 제13조(청구인 적격) ③ 의무이행심판은 처분을 신청한 자로서 행정청의 거부처분 또는 부작위에 대하여 일정한 처분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청구할 수 있다.
'법률상 이익' 혹은 '개인적 공권'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해서 크게 네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좁게 해석하는 견해부터 가장 넓게 해석하는 견해 순으로 권리구제설, 법상 보호이익 구제설, 보호 가치 있는 이익 구제설, 적법성 보장설이 그것입니다.
- 권리구제설은 법률에서 보장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청구인 적격이 인정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법상 보호이익 구제설은 권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법률이 보호하고 있는 이익이 침해당했다면 청구인 적격이 인정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보호 가치 있는 이익 구제설은 법률에서 명시적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더라도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이익이 침해당했다면 청구인 적격이 인정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마지막으로 적법성 보장설은 꼭 청구인의 이익이 침해당하지 않았더라도 행정청이 적법하지 않은 행정작용을 했다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가장 적합한 이해관계를 갖는 자에게 청구인 적격이 인정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판례는 "2. 법상 보호이익 구제설"의 태도를 취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보호되어야 할 이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생겼고, 국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키기 위해선 인정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입어 판례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법원도 아닌 일개 행정심판위원회가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심판청이 강경하게 법상 보호이익 구제설을 고수한다면, 저는 제가 침해당한 이익이 주정차 단속의 근거가 되는 도로교통법의 구체적인 보호 이익이라는 점을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침해당한 이익이 비록 구체적인 법률적 이익은 아니더라도 헌법적 권리 내지는 보편적 공익에 해당하고(보호 가치 있는 이익 구제설의 입장), 행정청이 민원을 법률에 의해 적법하게 처리할 것을 민원인의 입장에서 요구할 권리가 개인적 공권을 창출한다는 점(적법성 보장설의 입장)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일단은 심판청의 생각을 알 수가 없으니, 저는 모든 주장을 다 해 보아야겠죠.
심판을 제기한지 약 90일만에 심리기일이 잡혔고, 이번 주말이나 늦어도 다음주 주초 정도에는 재결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인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지만, 각하되더라도 불법 주정차 단속 유예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이 한두 줄이라도 재결서에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결과는 각하이면서도 본안에 대한 심리 결과가 재결서에 포함되는 경우가 흔치는 않지만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그런 재결서라도 받는다면, 구청과 다음 싸움을 하기 더 수월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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