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31 |
- 통신사 보안
- 손현보목사
- 정치와종교
- Clean Architecture
- 식물집사
- 두음규정
- 카시다
- 의무이행심판
- 아랍어
- 안전신문고
- 유심 해킹
- 로그인정책
- 양쪽 맞춤
- 언어와 권력
- 두음현상
- 장소의명사
- sim 스와핑
- 법률상이익
- 클린아키텍처
- 해킹 사건
- 대장동
- Typesetting
- bpfdoor
- 법정명
- 스마트국민제보
- rdb
- 저면관수
- 언어
- 정교유착
- 설계원칙
- Today
- Total
그루터기
두음법칙을 다시 생각하다 – '현상'과 '규정' 사이 본문
우리말을 배우다 보면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규칙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두음법칙'이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녀자 → 여자', '리유 → 이유'와 같은 예들은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규칙에는 풀어야 할 실마리가 많다. 특히 '두음법칙'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내용들이 실제로는 '현상'과 '규정'의 층위를 뒤섞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용어 자체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두음현상: 자연스러운 발화의 흐름
실제 언어 사용에서 일부 자음은 단어의 첫머리에서 발음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ㄹ'과 'ㄴ'은 어두(語頭)에서 회피되는 음으로, 이런 현상은 고대 한국어에서도 관찰되며, 지역 방언이나 어린이 발화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리유'보다는 '이유', '녀자'보다는 '여자'가 더 자연스럽게 발음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정 언중의 발화 습관이나 조음 기관의 운동 패턴, 발음의 편의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자음이 어두에서 회피되거나 다른 음으로 대체되는 경향을 우리는 '두음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두음현상은 단순히 한국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많은 언어에서 유사한 어두 제약(initial constraints)이 존재한다. 이는 음운론적 보편성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으로 강제되어야 할 규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두음규정: 선택된 현실, 배제된 가능성
현대 한국어의 표준어 규정에는 두음현상이 '두음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예컨대, '률동'은 '율동'으로, '녀자'는 '여자'로 바꾸어야 맞는 말이 된다. 이러한 규정은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이후 제도화되었으며, 이후 표준어 규정과 교육 과정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우리는 이 규범을 '두음규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규정이 모든 경우에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래어에서는 두음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리본', '로마', '라디오' 등은 그대로 사용된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두음규정을 채택하지 않고 있으므로, 같은 단어가 남북한에서 서로 다르게 표기되고 발음된다. 이는 두음규정이 단순한 음운 규칙이 아니라, 특정한 언어정책의 선택이며 사회적 합의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두음규정은 왜 필요했을까? 당시 표준어를 제정하던 시기는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였고, 언어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중시하던 시대적 분위기가 강했다. 다양한 방언과 말소리를 하나의 틀로 정돈하고 통제하려는 시도 속에서 두음규정은 '혼란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음규정이 현실 언어 사용의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비표준'으로 간주하고 제도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는 데 있다. 실제로는 발음에 무리가 없음에도, 규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교육 현장이나 공문서, 방송 등에서 철저히 제거된다. 이 과정은 언어 현실을 정리한다기보다는 잘라내는 방식에 가깝다.
두음규정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비용
두음규정은 단순히 발음을 바꾸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 언어생활에서 다양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대표적인 문제는 동음이의어의 증가다. 예를 들어 역학(疫學)이라는 단어는 질병의 전파를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하고 력학(力學)은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한 분과를 의미하지만, 두음규정에 따라 모두 '역학'으로 표기된다. 이로 인해 문맥이 없으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동음이의어로 인한 언어 비용이 증가한다.
또한 두음규정은 한자어의 원형을 가리기 때문에 어원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익명'이라는 단어는 원래 '닉명(匿名)'에서 왔다. 만약 '닉명'이라는 표기가 가능했다면, '이름을 숨김'이라는 의미가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학습자의 어휘 확장이나 문해력 향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규범이 의미 구조를 모호하게 만들고, 학습의 맥락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표준화와 규범화: 구어와 문어의 분리와 병존
다른 나라들에서는 '표준'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하나의 규범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많은 언어 공동체에서는 구어(口語)와 문어(文語)를 모두 표준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 차이를 연구하고 사전에 등재하며 존중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컨대 독일어의 경우, 공식 문서나 언론 등에는 Hochdeutsch(고지 독일어)가 사용되지만, 일상 언어에서는 지역 방언이나 구어체 표현이 폭넓게 사용되며, 그 역시 사전이나 문법 기술서에 ‘표준 독일어의 일환’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표준화'는 언어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다양한 사용 양상을 포괄하는 작업인 반면, '규범화'는 그중 일부만을 정답으로 간주하고 나머지를 배제하는 제도적 행위다. 한국에서는 이 두 개념이 혼용되고 있으며, 특히 구어의 실질적 존재가 비표준이라는 이유로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언어 현실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며, 언어 사용에 대한 제약을 넘어 언어 주체의 말하기 권리까지 제한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프랑글레(franglais)처럼 영어와의 혼용이 일상 대화뿐 아니라 광고나 방송 등 공공 영역에서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는 순수주의적 시각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언어의 실제 사용을 반영하는 흐름으로도 이해된다.
언어 규범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 권력 구조를 반영하는 상징이다. 이 점에서 두음규정은 단순한 발음 규칙이 아닌, 국가가 언중의 발화를 관리하고 지도하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일정한 기준 아래 언어를 통제하는 이러한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전체주의적 언어정책의 단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두음규정이 정치적 이념과도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은 두음규정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에서 '녀자', '률동'과 같은 표현을 쓰면 종종 '북한 말투'라는 지적을 받곤 한다. 이는 남북한의 언어 차이를 단순한 규범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짓는 경향이 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두음규정은 이념적 경계 짓기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남북한 언어 통합이나 문화 교류의 장벽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의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으며, 언어 차이는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두음규정이 하나의 '국어 의식'처럼 내면화되면, 타 방식을 자동적으로 배척하게 되고 언어적 포용력은 점점 줄어든다.
두음현상은 인정하되, 두음규정은 성찰하자
'두음법칙'이라는 용어는 마치 자연법처럼 절대적인 규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러운 두음현상과 제도화된 두음규정을 구분해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음운 현상은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고, 규범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언어 규범이 현상을 포용하기보다는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 규범의 목적과 효과를 다시 물어야 한다. 두음규정이 실질적으로 소통을 방해하거나, 이념적 경계 짓기의 수단으로 변질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언어의 본래 기능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두음법칙'이라는 익숙한 용어 대신, '두음현상'과 '두음규정'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구분된 개념으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다. 언어는 규범 이전에 삶이고 현실이다. 그러므로 언어 규범은 언제나 현실 언중의 말하기와 상호작용 속에서, 다시 질문받고 다시 쓰여야 한다.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랍어] 도구 명사 (اسم الآلة) (0) | 2022.01.22 |
|---|---|
| [아랍어] 의무 표현 يجب과 لا بدّ (0) | 2021.08.21 |
| [아랍어] 장소 명사(اسم مكان) (0) | 2021.05.31 |
| [아랍어] 단어를 길게 늘여 쓰는 방법 كشيده (카시다) (0) | 2021.05.11 |
| [아랍어 문법 #1] 명사의 세 가지 상태 (0) | 2021.04.28 |